계몽의 변증법

자연과의 미메시스적 화해:아도르노의 신화와 계몽의 변증법」요약

 

 

근대 인간은 이성과 합리성을 내세워 인간해방을 모색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근대이성을 바탕으로 한 현대사회의 문명은 인간해방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인간을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는 이것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인간이 자연과의 대결 속에서 자신을 보존하고 주체성을 의식적으로 확립해 나온 이성의 발달과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성의 발달사를 신화와 계몽의 변증법적 과정으로 파악하였는데, 고대 신화 속에서 계몽적 요소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지만, 근대 이후 도구적 이성에 기초한 현대문명은 동일성이란 신화에 사로잡혀 오히려 인간해방을 가로막고 인간의 야만화와 퇴보를 초래하였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메시스적 화해를 통해 계몽의 과정에서 이성에게 축출된 감성을 복원해야 한다고 보았다.


신화속의 계몽 : 자연으로부터의 탈출

신화는 단순히 자연과 신에 대해 기술한 것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신화적 태도에서 벗어나 계몽을 시도하고 있다. 그 예로 호머의 서사시 「오딧세이(Odyssey)」의 오딧세우스의 신화를 들 수 있다. 사이렌요정들과의 에피소드와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거인 폴리펨과의 일화에서 오딧세우스는 간지를 이용하여 신과 자연으로부터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이는 신과 자연의 공포와 위기에 인간이 이성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자기보존욕구를 충족하고 주체적 자아의식을 형성한 것으로 이처럼 신화 속에는 인간이 간지를 이용하여 자연의 힘에서 벗어나 문명을 이루는 계몽적 요소를 담고 있다.


계몽 속의 신화 : 자연에 대한 지배

근대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이성은 신화적 단계를 지나 본격적 계몽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계몽시대의 이성은 탈신화화를 추구한 미메시스적 간지를 넘어 자연에 대한 과학적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자연을 지배하려고 했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는 결국 모든 것을 객체화시키고 지배하려는 신화를 창조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로 귀결되었다. 도구적, 동일성 추구적, 타자지배적인 특징을 지닌 근대 이성이 인간 해방을 가로막아 왔으며 이러한 이성의 극단이 현대의 전체주의의와 인간의 자기파괴의 만행이다.


인간 해방의 모색 : 미메시스적 화해

인간해방을 위해서는 동일성의 논리를 넘어서 비동일적인 것, 비언어적인 것, 비개념적인 것을 구제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오직 부정적인 방법, 즉 부정변증법(negative dialectic)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결과적으로 인간 자신에 대한 지배를 초래하였고 인간의 해방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해방을 위해서는 인간이 자연에 구속되지 않으면서 자연을 지배하지도 않는 상태, 인간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에 아도르노는 “미메시스적 화해(mimetic reconciliation)”를인간 해방의 방법으로 제시한다. 이는 초기 이성의 발달 단계에서 볼 수 있었던 자연과의 미메시스적 친근화(assimilation)를 통해 자연과 화해하는 것을 말한다. 미메시스적 친근화는 자연에 맹목적으로 순응하거나 동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미메시스적 계기를 축출하고 도구적 이성으로 이를 대체했던 계몽처럼 자연에 대한 공포를 제거하지도 않는다. 자연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개별성은 유지하면서 자연에 친근하게 접근함으로써 느끼는 “객체와의 친근화”를 통해 자연미에 대한 체험 속에서 “화해”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예술에서 보듯이 심미적 차원의 미메시스적 태도에서 이러한 미메시스적 화해가 가능하며, 바로 여기에서 인간해방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하지만 아도르노의 미메시스적 화해는 ‘심미적 유토피아’로 제시된 것이지 ‘사회적 유토피아’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심미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미메시스적 태도는 현실을 지배하는 억압적인 동일화의 강제에 대항하는 가운데 비동일적인(non-identical) 것을 도와주는 예술의  인간의 화해와 화합을 지향하는 데 절실히 요구된다.

 



 


덧.

이 글은 『철학과 현상학 연구』, 한국현상학회 제19집 (2002. 11. 30), pp. 105-134 에 실려 있는 이동수,「자연과의 미메시스적 화해:아도르노의 신화와 계몽의 변증법」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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