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지도

그렇다고 크게 가난하지도

않은,

그러나 엄청 궁핍한 삶.

 

절제의 미덕, 절약의 미학으로

미화하기에는

미어지게 쓰라린 고통,

작은 것 하나 나누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어쩌다 그리

지지리도 궁상이 된 것인지

이런 걸 두고 마음의 빈곤이라 하나보다.

 

경제적으로 가난하더라도 마음까지 가난하지는 말아야지.

 

 

이 엄청난 구두쇠 덕분에

머리로만 알고있던 마음의 빈곤을 처음으로 가슴 속에서 느꼈다.

그리고 좀더 절약하고 저축을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

고맙다.

그리고 또 고맙다.

크게 상관은 없지만 덕분에

<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이 자꾸 떠올랐고, 다시금

가난한 사랑노래처럼 가슴 아프게 아름다운 이 시를 접할 수 있었다.

 

 

 

 

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

/신경림

 

 

떠나온 지 마흔해가 넘었어도

나는 지금도 산비알 무허가촌에 산다

수돗물을 받으러 새벽 비탈길을 종종걸음치는

가난한 아내와 부엌도 따로 없는 사글셋방에서 산다

문을 열면 봉당이자 바로 골목길이고

간밤에 취객들이 토해놓은 오물들로 신발이 더럽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얼려 공중화장실 앞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잠에서 깬다


지금도 꿈속에서는 벼랑에 달린 달개방에 산다

연탄불에 구운 노가리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는

골목 끝 잔술집 여주인은 한쪽 눈이 멀었다

삼분의 일은 검열로 찢겨나간 외국잡지에서

체 게바라와 마오를 발견하고 들떠서

떠들다 보면 그것도 꿈이다


지금도 밤늦도록 술주정 소리가 끊이지 않는

어수선한 달동네에 산다

전기도 안 들어와 흐린 촛불 밑에서

동네 봉제공장에서 얻어온 옷가지에 단추를 다는

가난한 아내의 기침 소리 속에 산다

도시락을 싸며 가난한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내가 불쌍해

오히려 눈에 그렁그렁 고인 눈물과 더불어 산다


세상은 바뀌고 또 바뀌었는데도

어쩌면 꿈만 아니고 생시에도

번지가 없어 마을사람들이 멋대로 붙인

서대문구 홍은동 산 일번지

나는 지금도 이 지번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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