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밝혀낸 신의 뇌

뇌, 신을 훔치다

 

 

제목이 좀 의아했다. 뇌, 신을 훔치다? 무슨 말인지... 제목 아래에 적힌 KBS 파노라마 제작진이 지었다는 작은 글을 보고 일종의 다큐멘터리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뇌와 신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라... 갑자기 흥미가 당기기 시작한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아마도 없을 가능성이 훨씬 더 많아 보이는데도 '똑똑한 사람들이 왜 신을 믿는 것일까?' ...(중략)... 21세기에 왜 신을 믿는지, 비이성적·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믿음에 대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보자는 게"(뇌, 신을 훔치다 pp.13~14 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의 취지다. 궁금증을 가득 안고 조심스레 본문으로 넘어갔다.

 

제 1장. 첫 부분에 『나는 천국을 보았다』의 저자 이븐 알렉산더의 이야기가 나온다. 전에『나는 천국을 보았다』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익숙한 소재부터 언급이 되니 친근감부터 들었다. (『나는 천국을 보았다』독서후기) 그 뒤로 신을 만났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지금까지 과학이 밝혀낸 있는 신의 모습을 들려준다. 종교에 대한 특정 색체를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그래서『뇌, 신을 훔치다』에서 파헤친 과학과 종교의 비밀은 설득력이 높다.

 

"현대 과학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뇌가 신을 느낀다는 신경학적 증거는 아주 많이 찾아냈다. 인간의 뇌 전체가 갓 스폿이 될 수 있으며, 명상과 기도는 뇌를 변화시키고, 특히 이성적인 전두엽을 활성화시킨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둘 중 하나다. 뇌가 신을 경험한다는 것은 뇌가 신을 만들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또는 뇌가 신을 경험한다는 것은 실제로 신이 존재한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종교가 금기시하는 곤란한 질문과 맞딱드리고 말았다. 그 질문은 이것이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을까? 인간의 뇌가 신을 만들었을까?''"(뇌, 신을 훔치다. p.84)

 

"기도나 명상을 하는 동안 몸은 깨어 있지만 뇌는 아주 깊은 안정 상태에 들어간다. ...(중략)... 채정호 교수는 뇌파와 화학적 변화가 특히 뇌의 어느 부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지, 그 위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제일 큰 변화가 나타난 곳은 전두엽, 그중에서도 가장 앞쪽에 있는 전전두엽이었다. 전두엽은 인간의 뇌 부위 중에서도 가장 인간다운 기능을 하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지각하고,판단하고, 결정하고, 연결하고, 연합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전두엽의 기능이다. ...(중략)... 혹시, 기억하는가? 이 책의 맨 처음에 우리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신을 믿는 것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행위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이제 우리는 그 전제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같다. 신에게 드리는 기도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이성적'인 행위였다."(뇌, 신을 훔치다. pp.172~173)

 

"보통 인간의 뇌에서 나오는 주파수는 기본적으로 0~30헤르츠 정도다. 그런데 감마파는 30헤르츠 이상의 아주 빠른 고주파이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에게서는 여간해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 감마파는 전두엽과 두정엽 쪽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특정한 대상에 완벽하게 몰두했을 때, 예컨데 완전한 평정심 상태에서 나타나며 행복을 느끼는 지표로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04년, 명상 중인 인간의 뇌에서 지금까지 측정된 적이 없는 높은 수준의 감마파가 발견되었다."(뇌, 신을 훔치다 p.174)


"우리의 질문인 '21세기 과학의 시대에도 왜 신을 믿는가?'에 대한 한 가지 답이 나왔다. 우리의 삶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것 과학이나 이성이 아니라 믿음이며, 그중 가장 강력한 믿음 체계가 바로 종교다. 그리고 그 믿음은 이미 뇌 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신을 믿는 것이다."(뇌, 신을 훔치다 p.188)

 

여러가지 정황을 종합해보면 인간이 인간답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신을 믿는 편이 훨씬 낫다. 그리고 이러한 뇌의 기능?은 신이 없다면 쓰잘데기 없는 기능이겠지만 신이 있다면 이처럼 놀라운 창조의 비밀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니 나는 신을 믿고자 한다. 그런데 어떤 신을 믿어야 할지 참 난감하다. 다행히도 『뇌, 신을 훔치다』에는 몸소 17개국에서 40여 가지의 종교를 체험한 위르겐 슈미더(Jürgen Schmieder)의 사례가 소개된다. 그가 쓴 『구원 확률 높이기 프로젝트』를 읽어보면 직접 각종 종교를 체험해보는 수고는 덜 수 있을 것같다. 하지만 정황을 보아하니 그도 어떤 종교를 택해야 할지 결정을 하지 못한 듯하다. 다만 그의 질문에 대한 종교학자 전진홍의 대답과 종교와 믿음에 대한 취재진의 분석을 통해 종교 선택의 가이드라인은 얻을 수 있었다.

 

"어떤 종교가 더 좋거나 덜 좋아서가 아니라, 종교가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에 특정한 종교를 선택하게 되는 거고요, 선택하면 그 종교에 자기 자신을 봉헌하는 거죠. 어느 여자가 좋을까, 끊임없이 저울질을 하죠. 그러나 선택하고 나서는 그런 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더 사랑할 수 있을까'만 고민하면 되죠. 어떤 신이 더 좋을까요? 제 생각에는 '내가 믿는 신'이 가장 좋은 신입니다."(뇌, 신을 훔치다 p.265)

 

"해로운 믿음은 내 믿음만 옳다거나, 남의 믿음은 무조건 거부하는 태도에서 쑥쑥 자라난다. ...(중략)... 이제 이단이나 소종파라는 선입견을 지우고 다시 한 번 보자. 영적인 가족을 통한 강력한 소속감, 신이 보장한 절대 평등의 공간,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약속. 이것은 비단 소종파뿐 아니라 모든 종교가 가진 공통점이다. ...(중략)... 현재 정통으로 분류되는 주요 종교들도 처음에는 무두 소종파였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초심은 과거나 지금이나 소외된 이웃을 구원하는 데 있다."(뇌, 신을 훔치다 pp.246~253)

 

그러니까. 타 종교에 배타적이지 않으면서 종교의 초심을 지니고 있는 종교. 그리고 내 마음에도 들 것. 그러니 일단 허구한날 우리집에 전단지 들고 찾아오는 종교는 빼야겠다. 알아보니 제일 자주 오는 교회는 침례교, 소책자 같은 걸 들고 오는 곳은 여호와의 증인, 그리고 이따금씩 밤에 찾아와 절에서 왔다며 벨을 누르는 곳. 이 곳은 그동안 생깠는데 어느 종파인지 한번 물어나 봐야지. 참, 바람 잘 날 없는 사이코 같은 옆집이 소속된 종교도. 예전에 우편물을 잘못 꺼냈다가 옆집 아저씨가 사랑의 교회 목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 종교는 정상이 아니다. 말도 안되는 종말을 믿는 종교도 추려내고 내 취향에 맞게 교리가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종교를 찾아봐야겠다. 내가 생각해도 어리석을 때도 많은 나지만 그래도 난 머리가 동해야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진홍 씨가 이상한 관점을 알려준 것같다. 취재진의 유일신 종교 사이에 유난히 분쟁이 많은데 알고 보면 다 같은 신이 아니냐는 질문에 "전진홍은 그들이 믿는 신은 결코 같은 신이 아니라고 했다.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를 갈망하는 건 어느 사회에서나 보편적이지만,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신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긴 역사와 문화가 있고, 이슬람은 이슬람대로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문화와 역사 속에서 요구되는 신의 모습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뇌, 신을 훔치다 p.261)고 말이다. 하지만 장님 코끼리 말하듯 각 종교에 따라 다르게 파악했을 뿐이지 원래는 그 게 그 신이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처간다. 내가 믿기에 합당한 종교를 찾아내기 전까진 일단 그 신이 그 신이라 생각하며 신을 믿고 있어야겠다. 이러다 또 하나의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