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하다 락스

 

 

 

겨우내 춥다고 욕실 문을 닫아 놓고 지냈더니 곰팡이가 장난아니게 서렸다. 타일에 붙은 공팡이는 그나마 그때 그때 닦기만 하면 제거되니 크게 상관은 없지만 문제는 실리콘 속으로 번진 곰팡이다. 이 곰팡이는 왠만해선 사라지지 않는다. 각종 세제는 물론 심지어 곰팡이 제거제를 동원해도 소용이 없다. 정말 초강력이다. 이렇게 쉽사리 제거되지 않는 곰팡이에는 락스가 짱이다. 문제가 있다면 독해서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 그래서 어차피 또 생길 곰팡이, 봄이 되면 한번에 없애기로 했다.

 

어느 덧 봄이 되었다. 날씨도 그럭저럭 풀리고, 창문을 닫지 않고 지내도 무리가 없을 것같다. 큰 마음 먹고 실리콘에 핀 곰팡이 제거에 들어갔다. 먼저 욕실에 난 작은 창문을 열고, 환풍기도 틀었다. 그 다음 실리콘 위에 키친 타올을 올리고 소량의 락스를 부었다. 그런데 이게 창틀에만 실리콘이 쏘아져 있었으면 그나마 빨리 끝났을텐데 벽과 벽 사이의 모서리도 실리콘으로 덮혀있어 처리해야 할 양이 조금 더 있었다. 시간이 지체되기 시작하니 서서히 분사한 락스 때문에 통증이 전해진다. 눈이 따끔거리고 호흡이 살짝 불편하다. 락스에 오래 노출되어 있다가는 각막이 헐어버리고 폐가 녹아내릴 것만 같다. 얼른 욕실에서 빠져나왔다.

 

락스 냄새를 맡은 후유증 때문인지 머리까지 지근거린다. 그나마 욕실에 작은 창이라도 하나 있어 환기하기 좋은 상황임에도 이런 것을 보면 아무래도 욕실에서 락스를 쓰려면 방독면 정도는 써야 할 것같다. 일단은 좀 쉬어야 겠다. 곰팡이는 시간이 없애주겠지. 한 시간쯤 지나 욕실 상태를 확인하러 들어가봤다. 아직도 락스 냄새가 진동한다. 작은 창과 환풍기만으로는 락스 냄새를 빼기가 쉽지 않을 것같다. 그나마 곰팡이는 흔적 없이 사라져 다행이다. 지독한 락스 냄새를 보다 빨리 없애기 위해 락스 묻힌 곳을 물로 씻어 내렸다. 그러고 나서 한 반나절 정도가 지나서야 자극적인 락스 냄새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락스에 노출된 시간은 적었지만 대단히 큰 일을 하나 치러 낸 것같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평택에서 실종되었다던 아이가 서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제서야 아이를 욕실에 감금하고 차가운 물을 끼얹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겨울에 욕실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것도 추운데 차가운 물을 붓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니. 내 살이 다 떨린다. 그래. 홧김에 순간적으로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바로 물기를 닦이고 따뜻하게 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영하의 날씨에 옷을 벗긴 채로 차가운 욕실에 그대로 가둬 놓고 살인할 의도가 없었다니. 꼭 산 사람을 냉동실에 집어 넣고 '나중에 보니 죽어있더라', '살인할 의도는 없었다'라고 발뺌하는 거랑 똑같다. 이건 분명 아이를 죽이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명백한 살인이다.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찬물 세례를 퍼붓기 전에 락스를 퍼부은 적도 있다고 한다. 그 독한 락스를 말이다. 그것도 몸은 물론 머리에다가도. 세상에나. 화장실에서 곰팡이를 제거하기 위해 소량의 락스를 분사하는 것도 충분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데 그걸 사람에게 드리부었다니. 이건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하다. 환기가 제대로 될 리 없는 욕실에서 얼마나 눈이 따갑고 숨쉬기가 힘들었을까. 또 피부는... 혹여나 락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아이가 그걸 닦아내겠다고 근처에 있는 산성세제를 쓰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염소가스가 발생하지는 않았을까. 씻을 때 수도꼭지에서 따뜻한 물은 제대로 나왔을까. 욕실에 감금되어 있는 동안 얼마나 춥고 배고프고 아팠을까.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그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을 7살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고 가혹했던 현실에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다.

 

부디 저기 저 세상에서는 자유롭고 행복하길... 따뜻한 곳에서 편히 쉬고, 마음껏 뛰어 놀고, 맛있는 음식도 배불리 먹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낌없이 사랑 받으며 지내길... 자꾸만 해맑게 웃던 그 아이의 개구진 얼굴이 눈앞을 흐린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