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중위의 여자>. 제목처럼 묘한 분위기를 풍기다 점점 암울해졌다. 그러다 십자가에서 예수를 해방시키듯, 프랑스 중위의 여자 - 사라도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주인공 찰스는 약혼녀와 결혼해 행복하진 않아도 평범한(?) 가정을 꾸릴 가능성이 있었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작가를 만난 탓에 부와 명예는 물론 사랑도 잃을 지경에 처했다. (작가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절망적 결말에 무게가 쏠리는 분위기다.)

가엽고 불쌍한 주인공이 더 안쓰럽게 느껴지는 데에는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쓴 작가가가 한몫했다. 작가는 자기 멋대로 이야기 속을 들락날락 거리고 이야기 전개를 쥐락펴락 하다가도 꼭 중요한 시점에서 자신은 관찰자일 뿐이라며 나몰라다. 만약 내가 그런 신(god)이 쓴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라면, 나는 진심 그 이야기 세계를 파괴해 버리고 말 테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서 발췌한 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를 내리는 것! 번쩍 떠오르는 섬광 속에서 찰스는 기독교 신앙의 진정한 목적을 보았다. 그것은 그 야만적인 십자가의 이미지를 찬양하는 것도 아니고, 십자가를 높은 곳에 매달아 두면 유용한 이득 - 속죄 - 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계속 높은 곳에 놓아두는 것도 아니고,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는 세계, 그의 얼굴에서 고통스러운 쓴웃음이 아니라 평화로운 회심의 미소를 볼 수 있는 세계를 가져오는 것이었다."(프랑스 중위의 여자 p.504)

"창조된 세계는 기계가 아니라 유기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순수하게 창조된 세계는 그 창조자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설계된 세계 - 그 형태와 구조를 평면도에 드러낸 세계 - 는 이미 죽은 세계다."(프랑스 중위의 여자 p.138)

"인생이란 결코 하나의 상징이 아니며, 수수깨끼 놀이에서 한 번 틀렸다고 해서 끝장이 나는 것도 아니고, ...(중략)... 도시의 냉혹한 심장으로 끌려 들어간 인생이 아무리 불충분하고 덧없고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인생을 견뎌 내야 한다. 그리고 인생의 강물은 흘러간다. 다시 바다로, 사람들을 떼어 놓는 바다로.(프랑스 중위의 여자 p.649)

"난 내 딸의 약혼자가 만사 순조로웠을 때보다 역경에 처했을 때 오히려 더 존경할만하다는 것을 깨달았노라고 그 애한테 말해 주어야겠네."(프랑스 중위의 여자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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