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계

 

 

내가 지금 있는 이 곳은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로 올라온 것처럼 밝고 고요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적막하지는 않다. 아주 밝은 정원에 잔잔하게 클래식이 흘러 나오는 것처럼 평화롭고 한가롭다. 그리고 따뜻한 솜구름에 덮여 있는 것처럼 따사롭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아늑한 공간에 있으니 솜구름 위에 두둥실 떠 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

 

혼자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주변에 눈을 돌려 보았다. 여기엔 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그들도 이제서야 나를 발견했다 보다. 내 모습이 조금 독특한지 하나 둘 나에게 몰려 들기 시작한다. 금방 사람들 사이에 둘러쌓여 버렸다. 그들을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겁이 나거나 무섭지는 않다. 그냥 어리둥절할 뿐 마음은 아주 편하고 좋다. 그 사람들은 왠지 여기에 있으면 안되는 사람이 여기에 온 듯 나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그리고는 자기네들끼리 웅성웅성 이야기를 나누는 것같이 보인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하지만 분명 그들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 왔고 사람들은 그가 들어 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아마도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쯤 되는 사람인 것같다. 그 사람은 나를 위 아래로 훝어 보더니 아무런 말 없이 손을 들어 내 이마를 뒤로 밀어 버린다.

 

슈--웅-----.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뒤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도 끝도 없이 계속 떨어진다. 계속. 갑자기 무언가에 걸려 멈춰섰다. "괜찮으세요?" 누군가가 나를 붙잡고 있다. 여긴 어디지? 모든 것이 낯설다. 난 도대체 어디로 떨어진걸까? 왜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나를 붙들고 괜찮냐고 물어보는 건 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이건 분명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꿈에서는 별 희안한 일들이 다 일어나기도 하지. 내 팔에는 이상한 호스가 달려 있다. 그리고 그 호스는 손잡이가 달린 기다란 막대기에 연결되어 있다. 닝겔이다. 이제서야 상황이 파악된다. 나는 닝겔을 맞고 있고 나를 붙잡은 사람들은 간호사들이다. 나는 방금 간호사와 함께 병실로 들어오다 쓰러진 것이었다.

 

"아. 네. 괜찮아요." 그렇게 말했지만 장자가 꿈에서 깨어나 '장자가 나비꿈을 꾸는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되는 것인가' 했던 것처럼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물론 다시 적응해서 잘 살아가고 있지만 그 때만큼은 내가 한 순간에 이 낯선 곳으로 떨어져 온 것만 같았다. 반면에 내가 여기로 오기 전에 있었던 세계는 내가 원래 존재했던 의심할 여지 없이 아주 당연한 그런 세상이었다. 알고 보니 그와 반대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이것은 내가 단 한번 아주 짧은 순간에 경험한 또 따른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의 뇌가 1초가 될까말까한 그 짧은 순간에만 뇌사상태였을리 만무하고 의학적으로 뇌가 만들어낸 환상으로 분류되겠지. 하지만 두가지 의문이 남는다. 하나는 내가 적혈구 수치가 정상인 상태에서 빈혈로 쓰러졌다는 것이다. 의사 말로는 출혈이 있긴 했었지만 적혈구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어서 병실로 옮겨도 좋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의문점은 난 분명 닝겔 걸이를 밀며 앞으로 걸어들어갔는데 난데없이 뒤쪽으로 쓰러졌다는 것이다. 혹여라도 이 세계로 떨어지기 전 누군가가 내 이마를 뒤로 밀어서일까?

 

정말 별 일이다. 내가 체격이 왜소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건장한 거구를 가지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다니 내 인생 역사상 이런 일은 또 없을 것이다.  지금은 뭐 우스갯소리로 내가 아주 짧게 영계를 체험하고 왔다고 말할 정도로 특별한 추억이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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