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we love dogs eat pigs and wear cows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멜라니 조이는 우리가 익숙하게 행하고 있는 것에 질문을 던진다. 개(애완견)를 먹는 것은 혐오스러운 반면 돼지고기나 소고기가 식탁에 오르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시작으로 공장식 축산농장의 현실을 고발한다. 그리고 육식을 하는 것이 '정상이며(normal), 자연스럽고(natural), 필요하다(necessary)'고 정당화하는 것은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일종의 이데올로기 - 육식주의(Carnism)라 보고 이를 전격 해부한다.

 

책을 읽으면서 용어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도축장(slaughter house) - 정육 공장(meat plant, meat factory), 닭의 부리 자르기(debeakin) - 부리 조절(beak conditioning), 칼 작업자(knife operator) - 예비 킬러(backup killer), 피가 뽑혀 죽었다(bled to death) - 방혈사(exsanguinated), 도축(slaughtering) - 가공(process)/수확(harvest) 등 같은 것이지만 용어의 사용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특히, 동물의 고기를 칭하는 말로 우리나라 말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라고 쓰지만 영어로는 동물을 연상시키는 용어를 쓰지 않는 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영어에서는 cow's meat, pig's meat, chicken's meat이라 쓰기  보다는 beef, pork, broiler, chevon, mutton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확실히 동물보다는 식품으로서의 고기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이 감춰지고 왜곡되어 나타나는지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를 통해 육식에 관한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현대의 육식주의는 광범한 폭력 위에 서 있다. 식육산업이 현재의 이윤 폭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동물을 도축하려면 이 같은 수준의 폭력이 불가피하다. 육식주의의 폭력성이 어느정도인고 하니, 거의 모든 사람이 그 현장을 제 눈으로 보기를 꺼리고, 목격한 사람들은 심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p.41)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의 결론은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동물의 고기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동물을 학대하고 학살하는 인간의 만행이 끔찍하고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그렇다고 채식만 하라니! 너무 극단적인 결론에 다다랐다. 나는 옮긴이처럼 "머리와 가슴으로는 반성하되 혀와 몸은 아직 온전히 뉘우치지 못한 육식주의자"(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p.211)도 못되나 보다. 책을 읽으면서도 정글에서 원시 부족이 사냥을 하여 동물을 죽이고 그 고기를 나눠 먹는 걸 떠올리며 육식이 당연하고 자연스럽운 일이라 여기고 있으니 말이다. 육식을 하는 대신에 지금의 폭력적이고 잔인한 정육 시스템을 근대화가 진행되지 않은 곳에서 가축을 기르고 그 고기를 소비하는 것처럼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바꾸면 되지 않을까. 일단 나부터 고기 소비를 줄여야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