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벌레(암)

 

 

요즘 사슴벌레 키우는 게 유행인가 보다. 아랫집에 사는 꼬마가 사슴벌레 세 마리를 자랑한다. 모두 아빠가 잡아 준 거란다. 크고 튼튼하게 생긴 사슴벌레. 나는 예전부터 사슴벌레 아니면 장수풍뎅이 같은 애완 곤충을 한번 키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꼬마 아이에게 사슴벌레가 세 마리나 있으니 한 마리만 달라고 했다. 대신 사슴벌레 먹이와 톱밥을 사면 나눠 주겠노라고. 그렇게 우리의 거래는 성사됐다.

 

그런데 이 꼬마가 사슴벌레를 지금 주겠단다. 나중에는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겠다고. 부랴부랴 집에 가서 사슴벌레를 키울만한 통을 가지고 왔다. 꼬마는 암컷을 줄지 수컷을 줄지 묻는다. 수컷이 두 마리이니 수컷을 달라고 했다. 임시방편으로 마른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주워 통 속을 꾸몄다. 꼬마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사슴벌레 수컷을 내 통 속으로 옮겨 넣었다.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진 꼬마는 곤충용 젤리를 하나 가져와 넣어 준다. 이렇게 해서 나는 외상?으로 사슴벌레 한 마리를 키우게 됐다.

 

다음 날, 꼬마는 이웃에 사는 동네 누나에게 사슴벌레 한마리를 줬다. 그 누나에게는 사슴벌레 암컷만 있고 수컷은 없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수컷 한 마리를 누나에게 준 것이란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계산법이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그 꼬마는 암컷 한 마리만 키우게 됐다.

 

그 다음 날, 꼬마는 사슴벌레 수컷이 키우고 싶단다. 친구들과 사슴벌레 싸움을 붙이며 놀기도 하는데 암컷은 뿔이 없어 불리하다고 말이다. 꼬마의 누나는 한번 준 것은 그것으로 끝이라며 꼬마를 말린다. 꼬마가 자꾸 나무젓가락으로 사슴벌레를 괴롭히며 놀아서 마음이 석연치 않지만 어차피 암컷이든 수컷이든 사슴벌레를 키워보는 게 목적이라 사슴벌레를 바꿔 주기로 했다. 수컷 장수벌레를 꼬마의 통으로 옮기는데 자꾸만 가여워 보인다. 사슴벌레를 교환한 그날 밤 수족관에서 곤충 키우기 제품을 구매해 사슴벌레의 집을 그럴싸하게 꾸몄다. 먹이구에 젤리를 꽂아 놓으니 젤리가 흘러 나오지 않아 깔끔해서 좋다.

 

아침에 밖으로 나갈 일이 있어서 어젯밤 꼬마에게 주려고 챙겨 두었던 곤충용 젤리와 톱밥도 챙겨 나왔다. 날이 더워서인지 꼬마네 집 현관 문이 열려 있었다. 현관 앞쪽에 꼬마의 사슴벌레 통이 보인다. 그 옆에 살짝 곤충용 젤리와 톱밥을 두려고 하는데 뭔가 심상치 않다. 꼬마의 사슴벌레가 뒤집혀 있다. 죽은 것이다. 그래도 그냥 두고 왔다. 나중에 꼬마의 아빠가 곤충을 잡게 되면 쓸 수 있겠지.

 

사슴벌레를 키워보니 먹이와 톱밥이 많이 들어가지 않고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관리할 것이 거의 없어 좋다. 그런데 이 사슴벌레가 톱밥 속이 좋은지 하루종일 보이지 않는다. 동네 아이들이 키우는 사슴벌레들은 낮에도 톱밥 위에서 잘만 놀던데 말이다. 하루 이틀 며칠이 지나도 사슴벌레가 보이지 않는다. 죽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한번씩 사슴벌레 통을 보면 젤리가 약간 줄어 든 것 같기는 한데 눈에 띄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밤늦게 사슴벌레의 통 쪽에서 소리가 들린다. 야행성인 사슴벌레가 활동을 시작했나 보다. 너무 깜깜해서 사슴벌레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둡지만 눈으로 사슴벌레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조명을 맞추고 사슴벌레 통을 옮겨왔다. 갑자기 밝아지니 사슴벌레가 놀랐나보다. 허겁지겁 발버둥을 치며 자기가 파 놓은 땅굴 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긴다. 꼭 바퀴벌레가 도망치는 것같다. 바퀴벌레에 비해 사슴벌레는 아주 느리지만 말이다. 순간 새까만 바퀴벌레를 애완 곤충이랍시며 키우고 있었던 건 아닌지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사슴벌레랑 바퀴벌레랑 생김새가 매우 비슷하다. 꼬마가 수컷을 키우고 싶어 했던 진짜 이유를 알 것같다.

 

 

 

 

덧.

대형 마트에 갔다가 애완용품을 파는 곳에서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를 파는 것을 봤다. 얇은 플라스틱 통 속에 애완 곤충 한 마리와 곤충용 젤리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곤충용 젤리의 껍데기가 붙어 있다. 새 것이다. 주변에 있는 다른 통에도 모두 젤리의 껍데기가 붙어 있다. 누군가 곤충을 사지 않으면 이 곤충들은 계속 굶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아무리 돈벌이를 위해 팔려가는 곤충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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