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중독을 일으키는 진짜 벌레들의 유쾌한 반란

책벌레 이야기

 

 

『책벌레 이야기』. 제목을 보고 책을 좋아하는 - 책벌레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안을 들여다보니 진짜 벌레에 관한 이야기다. 책에 살고 있는 벌레. 『책벌레 이야기』는 그런 책벌레에 관해 조사하고 연구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아주 사실적이어서 책벌레에 관한 진짜 연구 서적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실상 이렇게 책벌레에 관해 주도면밀하게 고찰하고 있는 책도 없겠지만 말이다.

 

책에 따르면 책벌레는 "어떤 종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진화해온 생명체다. 무생물이라는 설도 있다. 매우 작아서 광학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다. 사람이 이 벌레에 감염되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오로지 책에만 매달리는 증세를 보인다. 한 번 감염되면 완치가 불가능해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 원인인 책벌레는 의외로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으며 미워할 수 없는 존재이다. 책벌레는 책을 갉아먹는 작은 해충인 좀벌레(silverfish)와 행동이나 생태가 전혀 다르다. 특히 중요한 점은 책벌레는 책을 사랑하여 절대 책을 먹어치우지 않는다는 것이다."(책벌레 이야기 p.5)

 

책벌레는 크게 읽기벌레(readiing insect)와 쓰기벌레(writing insect)로 분류할 수 있지만 임상적으로 양자 사이를 왕복하는 읽기쓰기벌레(reading & writing insect)가 관측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책벌레는 대략 257종으로 어떤 유형의 책벌레에 감염되었냐에 따라 다양한 증후군이 나타난다. 『책벌레 이야기』에서 그 모든 종류의 책벌레를 다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책벌레에 관한 지식을 얻기에는 충분한 듯하다. 책벌레의 생태와 감염자의 증세는 물론 사육법까지 알려준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책벌레에 감염되어 있는지 자가진단해 보기도하며 재미 있게 읽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 나는 그닥 많은 유형의 책벌레에 감염되지는 않은 것같다. 일기쓰기벌레(journal writing insect)와 혼자읽기벌레에 감염된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집필도구(필기구)관심벌레에 의한 집필도구집착증(literary goods fetishism), 독서습관벌레(habit of reading insect)에 의한 책모서리접기증후군(dog-ear syndrome), 그리고 서평증후군(book review syndrome)도 약간씩 보인다.

 

책벌레에 감염된 대부분의 증상은 좋고 나쁨을 가리기 힘들지만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증후군도 더러 있다. 대부분이 쓰기벌레에 의한 증상이다. 읽는 것보다는 쓰는 과정이 훨씬 더 힘들고 고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쓰기벌레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특히 동인지쓰기벌레(coterie magazine insect)나 자비출판벌레 같은 쓰기벌레에 감염되어 겪는 비참한 과정은 밟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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