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 beetle(m)

사슴벌레(수)

 

 

2013년 11월.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사슴벌레를 발견했다. 사슴벌레는 깨진 통에 있었는데 발효톱밥은 마른 상태였고 사슴벌레가 먹을 젤리도 들어 있지 않았다. 누군가가 잠시 밖에 사슴벌레를 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쓰레기버리는 곳 바로 옆에 이렇게 가지런히 놓고 갈 리가 없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버린 것이다. 안키울 것이면 자연으로 돌려 보낼 것이지 왜 이렇게 두고 갔는지 모르겠다.

 

추운 날씨에 먹을 것도 없이 있는 사슴벌레가 가여워 집으로 데려 왔다. 집에 있는 암컷 사슴벌레가 지내던 통에 함께 넣어주었다. 혼자 살다 낯선 사슴벌레가 들어오니 사슴벌레 암컷이 단단히 경계하는 태세다. 둘은 사슴벌레 통 양 끝에 자리를 잡았고 곤충젤리도 한마리씩 차례로 먹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사슴벌레들이 동면에 들어갔다.

 

이듬해 2월. 날이 풀렸다고 느낀 것인지 사슴벌레가 나와서 움직인다. 다행이다. 동면에 들어갔다 혹여라도 죽어버린 게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말이다. 아직도 사슴벌레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멀찌감치 떨어져 지낸다. 사슴벌레를 번식시켜 보고 싶었는데 그냥 이데로 키워야 겠다.

 

사슴벌레 젤리를 갈아주는데 뭔가 이상하다. 수컷 사슴벌레는 혼자 잘 놀고 있는데 암컷 사슴벌레는 뒤로 벌러덩 자빠져 있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겨우 동면에서 깨어났는데 며칠이 지났다고. 가슴이 철렁 거린다. 혹시나 싶어 살짝 건드려 봤다. 다리가 살짝 움직이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이상 움직이거나 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더 건드렸다. 아무 반응이 없다. 죽었다.

 

사슴벌레의 수명이 짧게는 5개월에서 길게는 2-3년도 산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적어도 2년은 같이 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우리집에 온지 7개월만에 죽었다. 자연 속에서 살았더라면 더 오래 살았을 것을 인위적으로 좁고 폐쇄된 통속에 집어 넣어 키워 빨리 죽어 버린 게 싶기도 하다. 그 사슴벌레가 언제 태어났는지 모르니 그냥 오래 살았겠거니 생각하는 게 맘 편하겠다.

 

이제 남은 건 사슴벌레 수컷 한마리. 원래 키우던 사슴벌레 암컷 대신에 사슴벌레 수컷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하지만 그 두 마리를 함께 키운 게 얼마나 되었다고 - 동면 기간을 빼면 1주일 가량 되려나 - 한마리만 통 속에 있으니 허전한 느낌이 많이 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암컷과 수컷이 함께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라도 남겨 둘 걸.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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