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와 정치학자 권력에 중독된 언어를 말하다

언어의 배반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들 중에 본래 의미를 왜곡하고, 편견을 조장하는 것들이 꽤나 많다. 우리는 이를 '언어의 배반'이라고 부르기로 했고, 언어의 배반 사례들을 추적했다. 살색, 검둥이, 처녀작, 화냥년, 여류 작가, 바른손 등 인종이나 여성 차별적 언어, 혹은 비속어, 과장된 어휘 등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정교하게 위장한 채 숨어 있는 언어 배반의 사례들도 많다. ...(중략)...언어는 우리의 무의식을 만들고, 우리는 그 언어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으며, 특정 계급과 특정 언어의 밀착 관계에 의해 권력의 수직적 위계질서가 고착된다."(언어의 배반 pp.4~6 정치학자의 말 중에서)

 

"언어는 존재의 일부이면서 그 존재의 어떠함을 담아내는 일종의 관계대명사와 같다. ...(중략)... '언어의 배반'이란 언어가 우리를 배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중략)... 엄밀하게 말하자면 배반의 주체는 다름 아닌 우리 인간이며 언어는 그 배반의 기호일 뿐이다."(언어의 배반 pp.276~277 언어학자의 말 중에서)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정확하게 경고한 함정, 즉 민중들은 항상 지배 계층을 비판하지만 한순간도 자신들의 지배자의 언어로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함정"(언어의 배반 p.6)을 알고 있었던지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언어의 배반』을 접했다. 정치학자와 언어학자가 편지를 주고 받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자칫 지루하거나 따분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때때로 주제 단어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혹은 자기만의 변명을 늘어놓은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대체로 괜찮았다.

 

『언어의 배반』은 권력에 의해 언어가 왜곡되고 변질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내가 잘못 받아들이고 있던 단어도 발견했다. 빨치산. 그리고 성실과 평범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맹목적인 성실과 근면함, 복종이 얼마나 큰 해악을 가져오는지 새삼 느꼈다.

 

"빨치산은 원래 불어로 파르티잔partisan에서 온 말로서,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에 저항하던 비정규군 유격대, 즉 레지스탕스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이 한국전쟁을 전후로 해서 지리산이나 태백산맥 등 산악 지대에서 준동하던 공산 게릴라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빨치산을 산에서 활동하는 빨갱이라는 순우리말로 알고 있는 사라들이 꽤 있답니다."(언어의 배반 pp.20~21)

 

"그동안 우리가 사회에서는 품행의 방정과 성실이라는 것이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에 의해 규정된 '네모' 안에 들어가는 반듯함을 말할 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중략) 규정된 네모에 어긋남이 없도록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통해 자신을 맞추어가는(표준화 작업을 하는) '성실'한 태도가 장려되어 온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체제 순응적 '성실'을 강요하는 이들(소위 권위의 대행자로 자임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도덕성이나 영적 '권위'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언어의 배반 p.188)

 

"악의 평범성에 대한 과도한 주장은 책임 회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평버한 사람도 특별히 악한 상황을 만나면 악해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악한 행위를 하는 집단에 가담했다면 개인이라도 책임이 면제되지 않습니다. ...(중략)... 열악한 시대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거나 상부의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변명은 금물입니다."(언어의 배반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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