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제목이 샐러드처럼 싱그러워서 집어 들었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표지에 샐러드를 먹고 있는 사자 그림도 있고. 왠지 착하고 순한 사자에게 일어난 재미난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같다. 하지만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내각 생각했던 그런 우화를 담고 있는 책이 아니었다. 이 책은 <앙앙 anan>이라는 잡지에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에세이를 묶어 놓은 책이었다.

 

앞부분에 저자가 소설가로서 또는  잡지에 글을 연재하면서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주저리주저리 풀어놓고 있어서 황당했다. 쓸 거리가 있느니 없느니, 소설가가 되기를 잘했느니 하는 등. 이런 걸 묶어서 책으로 낸 것도 이상하고 아무리 잡지라지만 이런 글을 써서 연재도 하나 싶을 정도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로 읽는 걸 포기하고 몇 편만 읽어보자는 생각에 마음에 드는 제목을 골라 듬성듬성 읽기 시작했다. 솔직하고 담백한 저자의 필체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정감이 간다. 저자가 좀 많이 털털하고 재미난 분 같다. 읽다보니 한편도 빠짐없이 다 챙겨 읽었다. 

 

"나는 평소 해외여행 시에 갖고 갈 옷을 미리 준비한다. 여행 도중에 버릴 수 있는 옷 말이다. 티셔츠나 양말이나 속옷은 '이건 이제 필요 없겠네' 싶은 것들을 모아서 챙겨간다. 그리고 입고 버린다. 빨래하는 수고도 덜고 짐도 줄이고 일거양득이다."(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中 자, 여행을 떠나자 p.116)

 

"운전하다 신호대기가 길어지면 차 안에서 당신은 무엇을 하시는지? 나는 곧잘 이를 닦는다. 항시 칫솔을 구비하고 있다가 치약도 물도 없이 그냥 천천히 구석구석까지 닦는다.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연제 어디서라도 간단히 양치질을 할 수 있어 아주 편리하다."(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中 신호대기 중의 양치질 p.188)

 

소박한 차림으로 여관에 묵던 중 여관 주인이 저자를 알아보고 서비스를 달리 해 줬다는 얘기를 봐서는 저자가 일본에서는 꽤나 유명한 분인가 보다. 작가인데 얼굴까지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저자의 이름이 뭐였더라. 책장을 덮어 저자의 이름을 봤다.

 

무라카미 하루키. 가만. 저자의 이름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이 분 혹시...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적 있는 엉뚱하고 재치 넘치는 특유의 소설들의 저자? 혹시나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 유명한 일본 작가가 이 책의 저자였다.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의 이름을 유심히 살펴볼 걸. 저자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더 재미있게 이 책을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째되었건 처음에는 시큰둥 했지만 결국 재미있게 책을 다 읽은 걸 뭐. 책 내용이 잊혀질만하면 다시 처음부터 책장을 넘겨보고 싶다. 꼭 그렇게 해야지. 마지막으로『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읽으면서 크게 공감했던 부분을 남겨 둔다.

 

"인터넷에서 야자수에 대해 이래저래 조사해보았지만, '왜 야자수는 키가 큰가요?' 같은 문제는 전혀 화제에 오르지 않았다. 아무도 그런 것을 일일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인터넷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모른다'라는, 전부터 내가 주장하던 것이 또 증명된 셈이다."(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中 야자수 문제 p.218)

 

"생각해보면 옷이라는 것은 소설가의 문제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비판하든,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이것이 내 말이고 이것이 내 문체다'라고 확실할 수 있는 것을 사용해서 비로소 마음속 무언가를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낼 수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말도, 세련된 표현도, 자신의 감각과 삶의 방식에 어울리지 않으면 그다지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中 선물하는 사람, 받는 사람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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