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money can't buy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돈이 있으면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는 황금만능주의 시대. 과연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남아 있을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제목을 보니 참 시대 착오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별관심을 두지 않고 다른 책으로 눈길을 돌리려는데 마이클 샌델이라는 저자의 이름이 보인다. 마이클 샌델. 2010년대 초반 '정의'라는 주제를 가지고 세계적 담론을 형성했던 바로 그 마이클 샌델. 내가 처음으로 마이클 샌델을 접했던『정의란 무엇인가』가 떠오르면서 이 책도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어보니 역시나 마이클 샌델의 책이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샌델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졌던 그런 일에 문제를 제기했다. 예를 들어 공항에서 일등석 승객들은 줄을 서지 않고 바로 통과하는 것 같은 일 말이다. 비행기 일등석에 대한 이야기는 일종의 로망이 담긴 - 돈을 많이 가진자들이 누리는 편리하고 쾌적한 서비스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샌델은 이것이 새치기라고 꼬집어 드러낸다. 새치기. 그러니까 돈으로 살 수 있는 새치기 자격. 뭐, 그런 거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공항에서의 새치기권처럼 어느 정도 익숙해진 - 그래서 크게 문제가 되어 보지지 않았던 이 새치기 권이 다른 곳에서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동반하며 나타났다. 예를 들어 병원 같은 곳에서 말이다. 밀려 있는 환자로 인해 새치기권이 없는 위급한 환자는 의사의 진료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사람의 생명을 두고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종 인센티브와 명명권, 그리고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련된 시장에서도 많은 것이 돈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교도소 감방 업그레이드 1박에 82달러, 인도 여성의 대리모 서비스 6250달러, 멸종위기에 놓인 검은 코뿔소를 사냥할 권리 15만 달러, 대기에 탄소를 배출할 권리 1톤에 13유로 등.(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pp.19~68 참조) 정말이지 거의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 파는 것같다. 놀랍고 기가 막히다.

 

마이클 샌델은 이처럼 시장가치가 인간활동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무엇이든 사고파는 사회를  '시장사회'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시장사회의 문제점으로 불평등과 부패를 꼽았다. 시장사회에서는 돈이 모든 차별이 근원이 되며, 시장이 교환되는 재화에 영향을 미쳐 인간이 추구해야 할 비시장가치 - 예를 들어 건강, 교육, 가정생활, 자연, 예술, 시민의식 같은 가치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어떤 재화나 사회 관행을 부패시키는 행위는 그 평판을 깎아내리는 행위고, 가치를 합당한 수준보다 낮게 평가하는 행위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p.59 참조.)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시장의 도덕성과 올바른 사회, 올바른 삶의 모습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시키려 한다.

 

"우리는 시장경제를 원하는가 아니면 시장사회를 원하는가? 공공생활과 개인 관계에서 시장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 어떤 재화를 사고팔아야 할지, 어떤 재화가 비시장가치의 지배를 받아야 할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돈의 논리가 작용하지 말아야 하는 영역은 무엇일까?"(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p.29)

 

 

 

아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모서리를 접었던 부분이다.

 

"누군가 섹스를 하거나 간을 이식받는 대가로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여기에 동의한 성인이 기꺼이 팔고자 한다면, 경제학자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얼마죠?"일 뿐이다. 시장은 고개를 가로젓지 않을 것이다. 시장은 훌륭한 선택과 저급한 선택을 구별하지 않는다. 거래하는 쌍방은 교환 대상에 어떤 가치를 둘지 스스로 판단할 뿐이다. 이렇듯 재화에 대한 가치판단이 배제된 태도가시장논리의 핵심이며, 시장이지닌 매력을 상당 부분 선명해준다. 하지만 시장을 포용하면서 도덕적·정신적 논쟁을 꺼리는 태도 때문에 우리는 무거운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러한 태도가 공적 담론에서 도덕적 에너지와 시민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오늘날 많은 사회를 괴롭히는 기술관료 지향의 경영정치가 발달하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다."(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p.33)

 

"이타주의·관용·결속·시민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시장 지향 사회의 결함 중 하나는 이러한 미덕이 쇠약해지게 방치하는 것이다. 우리의 공공 삶을 회복하려면 좀 더 부지런히 미덕을 행사해야 한다."(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p180)

 

"시장시상주의 시대는 공공 담론에 도덕적 · 정신적 실체가 상당히 부족했던 시대와 일치한다. 시장을 제자리에 놓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 관행과 재화의 의미에 관해 솔직하게 공개적으로 숙고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재화의 의미에 관해 논쟁하는 것을 넘어, 좀 더 큰 의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pp.274~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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