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하고 사라질 것인가, 그들처럼 롱런할 것인가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 제목이 비호감이라 흘쩍 보고 지나쳤는데 그날따라 눈에 들어 오는 책이 없어 일단 읽어보기 시작했다. 프롤로그부터 찬찬히 읽어 나갔는데, 오! 재미있다. 80년대에 옷가게를 시작한 이랜드와 상가 아주머니.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랜드는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지은이가 만난 상가 아주머니는 망해가는 상가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지은이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지은이는 변함없이 사랑받는 전통시장의 비밀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자그마치 1년간 40개국 150 여 곳의 시장을 방문했다.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에는 지은이가 직접 보고 느낀 경험담을 생생하게 옮겨 놓고 있는데 책의 앞부분에 내가 가 본 적 있는 시장 - 영국 런던의 버러 마켓(Borough Market)과 오스트리아 빈의 나슈 마르크트(Naschmarkt) - 이 나와서 더욱 실감났다. 그래서인지 아직 가보지 못한 시장 방문기를 읽을 때에도 마치 내가 전세계의 시장을 돌아다니며 체험한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중에서 chapter 7 '파괴의 달인이 되어라'에 소개된 시장은 정말 흥미로웠다. 호주 멜버른에 있는 신발을 벗고 바닥에 누워 책을 보거나 낮잠을 잘 수 있도록 만든 카페와 시드니 타워 전망대에 있는 360˚ 회전하는 레스토랑, 체코에 있는 좁은 건물 사이를 통과해 들어가는 레스토랑 - 그곳엔 신호등이 재치있게 활용되고 있다. 아울러 다른 chapter에 소개된 커피를 리필하면 감사의 뜻으로 5센트짜리 동전을 건네는 핀란드의 한 카페도.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을 읽으며 예전에 시장에서 느꼈던 살아있는 듯한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재래시장은... 우리나라의 재래시장도 이랬으면 좋겠지만 언제부턴가 시장에서 느낄 수 있었던 특유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못 받고 있다. 생동감이 그리워 전통시장을 찾아갔지만 맥빠진 모습밖에 볼 수 없었다. 과일 야채는 시무룩하고 어물전에선 구린내가 났다. 그나마 신선해 보이는 것이 있어 구입하려 했지만 한번에 너무 많은 양을 비싼 가격에 팔려고 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몇 가지 샀는데 속이 엉망이다. 돈만 날렸다. 이런 경험이 반복된다. 전통시장이 사라지는 것이 싫어 일부러 전통시장에 가서 장을 보곤 했는데 맥이 빠진다. 전통시장에 가기가 두렵다. 마트는 획일화 되어 있고 삭막하기도 하지만 이젠 마트로 가는 발걸음이 더 경쾌하고 좋다.

 

지은이는 우리나라의 전통시장의 발전방안을 고민한다. "시장은 이제, 누군가를 따라 하거나 닮으려는 노력을 멈추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렇게 전통시장 활성화에 돈을 쏟아 부었는데도 시장이 살아나지 않는 이유다. 그간 쌓아온 장사 경력으로만 보면,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의 전문가들이 모인 곳이 우리나라 전통시장이다.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나만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다."(살아남은 것들의 비밀 p. 279) 그리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보케리아 시장에서는 "이곳에서 판매되는 제품을은 하나같이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었을 뿐 아니라 다 맛있어 보였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옛 선인들의 속담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진열 자체가 관광객들에게 볼거리와 즐거움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을 보며, 우리나라 전통시장도 관광객들에게 그러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창조적인 진열기법 개발이 꼭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아울러 시장 여행을 통해 얻은 인생에 대한 깨달음도 들려준다.

 

"세워서 진열된 생선은 많은 소비자들에게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었고, 즐거움을 주었다. 새로움은 늘 충격과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세상 모든 일에는 정답이란 애당초 없는지도 모르겠다. ...(중략)...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삶에 대한 자신만의 각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해답이 될 수는 있다.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고, 배운 것을 다시 파괴하는 용기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최고의 각도인 것 같다."(살아남은 것들의 비밀 p.199)

 

"세월의 흐름과 변화의 광풍에도 뿌리가 흔들리지 않고 몇백 년씩 명맥을 이어  오는 시장들의 비밀은 바로 본질에 있었다. 우리의 삶 또한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고 깊이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왜 사는가?' '왜 이 일을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거센 비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성숙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살아남은 것들의 비밀 p.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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