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을 기대할 수 없는 큰 질문들

빅 퀘스천

 

 

『빅 퀘스천』. 제목을 보니 몇 년 전 인기가 많았던 『빅 픽처』가 떠오른다. 『빅 픽처』와 『빅 퀘스천』. 두 책이 비슷한 형식의 제목을 달고 있어 하나의 세트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팍 든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빅 퀘스천』을 살펴봤다. 아니나 다를까. 『빅 퀘스천』의 저자가 더글라스 케네디다. 왠지 익숙한 그 이름. 『빅 픽처』로 명성을 떨쳤던 그 사람이다. 같은 저자가 쓴 비슷한 형식의 제목이니 이번에 나온 『빅 퀘스천』도  『빅 픽처』처럼 한 권의 소설책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빅 퀘스천』은 내 예상과 달리 저자의 수기집이었다. 저자가 살아가면서 깊이 생각했던 큰 질문들, 그리고 저자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에세이.

 

저자가 던진 '빅 퀘스천'은 다음과 같다.

 

1. 행복은 순간순간 나타나는 것일까?

2. 인생의 덫은 모두 우리 스슬 놓은 것일까?

3. 우리는 왜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야기를 재구성하는가?

4. 비극은 우리가 살아 있는 대가인가?

5. 영혼은 신의 손에 있을까, 길거리에 있을까?

6. 왜 '용서'만이 유일한 선택인가?

7. 중년에 스케이트를 배우는 것은' 균형'의 적절한 은유가 될 수 있을까?

 

몇 개는 뜬금없는 것 같기도 하고 몇 개는 나도 고민을 했던 그런 질문이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7가지의 질문 모두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해볼 법한 고민이 아닌가 싶다. 아직 내가 저자만큼 인생을 오래 살지 않아서 그런 고민은 해보지 않은 것일 뿐. 아마도 나도 나이가 더 들면 저자가 했던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저자의 고민이 하나씩 나의 고민으로 바꼈다.

 

그런데 빅 퀘스천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저자가 각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분명 소제목은 대답을 기대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말이다. 『빅 퀘스천』이 독자들을 '대답을 기대할 수 없는 질문'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고는 나몰라라 하는 책이 아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왜 소제목을 그렇게 달았는지 모르겠다. 표지의 다른 곳에는 '지리멸련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7가지 빅 퀘스천과 해답!'이라 적어 놓을 것으로 봐서는 질문과 함께 답도 제시하는 책이 맞는 것 같은데... 이것이야 말로 대답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질문이지 싶다.

 

 

 

 

어쨌든 빅 퀘스천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아래와 같다. 물론 『빅 퀘스천』을 읽었다고 해서 저자의 생각에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의 삶을 돌아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된다.

 

 

1. 행복은 순간순간 나타나는 것일까?

 

"행복이란 특정한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잠 못들게 하는 것들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언제라도 경이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빅 퀘스천 p.31)

 

 

2. 인생의 덫은 모두 우리 스스로 놓은 것일까?

 

"덫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가장 불편한 진실은 그 덫을 만든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을 선택한 것도, 성격이 맞지 않는 여자와 결혼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을 구입한 것도, 자녀를 낳은 것도, 주변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는 것도 모두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빅 퀘스천 pp.72~73)

 

 

3. 우리는 왜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야기를 재구성하는가?

 

"모든 이야기의 본성은 주관적이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각자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진실일 뿐이다. 우리는 늘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비난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핑계를 대거나 변명하기 위해, 그 모든 상황을 어떻게든 스스로 견딜 수 있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재구성한다."(빅 퀘스천 pp.109~110)

 

 

4. 비극은 우리가 살아 있는 대가인가?

 

"비극을 갈무리하고 지나갈 길을 찾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인생사의 수많은 비극을 완벽하게 극복할 수 있는 해답은 없다. 인생사의 비극적인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극복해낸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그 그늘까지 완벽하게 해소할 수는 없다. 사람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괴로움을 끝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살아 있는 동안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쓸 필요가 있다.(빅 퀘스천 p.116 우리는 왜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야기를 재구성하는가? 중에서)

 

""자기 파괴적인 일탈 행위로 비극을 자초한 게 얼마나 한심하고 비참한 짓이었는지 뒤늦게야 깨달았어요. 내 자신이 자초한 비극이었죠. 충분히 피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비극을 피하려면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어야만 하죠. 우리는 매일 아침 거울 속에 들어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슴을 보며 살아가죠. 그렇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확실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 그 사실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큰 비극입니다.""(빅 퀘스천 p156 저명한 칼럼니스트였던 하워드가 한 말)

 

 

5. 영혼은 신의 손에 있을까, 길거리에 있을까?

 

"나는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난다고 믿고 있다. 죽는 순간 꺼진 생명의 스위치는 다시는 켜지지 않을 거라 믿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게 사실이다. 죽음으로부터 달아날 곳이 없다고 생각하면 때로 울적해진다. 타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살다보면 수없이 타인의 죽음과 마주하게 되니까. 하지만 자기 자신의 죽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빅 퀘스천 p.187)

 

"시체는 매장이든 화장이든 처리될 곳으로 보내질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다.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갈 것이다. 우리가 평생 애써 이룬 것들 역시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직접적으로 관계된 몇 사람만 빼면 죽은 자를 기억할 사람은 없다. 이미 우리 앞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빅 퀘스천 pp.203~204)

 

 

6. 왜 '용서'만이 유일한 선택인가?

 

"내가 끝내 부모에 대한 분노를 품고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그 분노가 나를 갉아먹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마음의 평화를 얻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이라면 내 부모를 용서하는 것밖에 없었다. ...(중략)...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건 자기 자신을 위하는'일 이라는 진실!"(빅 퀘스천 p.237)

 

"용서하고 미움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받은 피해의 부스러기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을 훨씬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의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다. ...(중략)... 용서는 정신건강에 좋다. 다만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용서라기란 정말이지 몹시 힘든 일이다."(빅 퀘스천 p.240)

 

"이미 벌어진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거나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그 일이 내 삶에서 독소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용서는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직 그 일 혹은 누군가로 인해 받은 '상처'에서 여전히 고통스런 피가 흐르고 있다면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중략)... 용서의 과정은 전적으로 혼자 이루어가야 하기에 더욱 두렵고 힘든 일이다. 타일을 용서하기가 왜 그토록 힘들까? 그것은 바로 우리 사진을 용서하기 힘들기 대문이다. 그렇다. 계속 기억하고 번민하지 않는 한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다."(빅 퀘스천 p.259)

 

 

7. 중년에 스케이트를 배우는 것은' 균형'의 적절한 은유가 될 수 있을까?

 

"불안정한 어린 시절의 산물인 분노, 후회, 가책,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즉, 어두운 기억들이 내 삶에 계속해서 그늘을 드리우도록 내버려둔다면 무릎을 제대로 굽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유연성이 필요하다. 어둠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우리는 삶에서 필연적인 온갖 난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 '균형을 생각하라.'"(빅 퀘스천 p.280)

 

"가장 커다란 '의심'은 자기 자신에 대해 품는 의심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잘 다스려 '내일에는 내일의 해가 뜬다.'는 낙관주의를 지켜갈 수 있을까? 바로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숙제가 아닐까? 사는 동안 우리는 돌고 또 돌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머지않아 다시 어둠이 찾아오겠지만 그럴 때마다 퀘백에서 내게 스케이트를 가르쳐주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얼음위에 서 있게 해준 뤽의 말을 떠올릴 것이다. ...(중략)... '굳어지지 말것, 무릎을 굽히고 균형을 잡을 것,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써 볼 것.'"(빅 퀘스천 pp.300~301)

 

 

이렇게 옮겨 놓으니 다소 교과서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저자가 구구절절이 혼잣말만 하는  것같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마치 단편 소설집을 엮어 놓은 듯하다고 해야 하나? 『빅 퀘스천』은 저자가 직접 겪거나 들은 실제 이야기를 소설처럼 각색해 놓고 있어서 책은 읽은 후 여러 편의 단편 소설을 모아 읽은 듯한 느낌이 든다. 때로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막장으로 치닫기도 하고 때로는 소설이라고 해도 억지스러워보일 정도로 어처구니 없게 전개 되는 이야기들. 정녕 이것이 실화라니! 정말 살다 보면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난다. 그렇게 한치 앞도 명확히 내다볼 수 없는 인생 속에서 위로 받고 위안 삼을 수 있는 책. 『빅 퀘스천』은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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