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Barbe Bleue

푸른 수염

 

 

표지 사진에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친 바람에 내려 놓지 못하고 읽은 책. 『푸른 수염』. 무슨 소설인가 싶어 책 날개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잔혹한 동화 『푸른 수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책이라고 한다. 원작 『푸른 수염』이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선한 비유와 상징, 묵직한 지적 유머가 담긴 두 주인공의 위트 있는 대사들이 독자들을 쉴 틈 없이 공격한다"고 소개하길래 그 속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무작정 책장을 넘겼다.

 

『푸른 수염』은 프랑스의 호화로운 저택에 사는 에스파냐 귀족 '돈 엘레미리오 니발 이 밀카르'가 금지된 암실에 들어 간 세 들어 사는 동거녀를 죽이는 내용을 소재로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신의 사진을 수집(?)하여 자신만의 미학 세계를 완성하고자 한다. 허걱. 이런 편집증적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집어들다니.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끔직한 장면으로까지 치닫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중간에 책을 덮어버릴까 싶기도 했지만 무슨일이 있어도 암실에 들어가 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는 '사튀르닌'을 믿으며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

 

책의 중반부를 지났을 때였을까. 너무나 파격적이라 인상에 남는 내용이 포착되었다.

 

# 1.

"욥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어요. 하느님이 변태 중의 변태라는 걸 알기 때문에 감히 항의를 못하는 거죠. 불평을 하면 하느님이 또다시 자신을 괴롭힐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게다가 전 하느님이 피조물을 시험하는 것 자체에 반발심이 들어요."(푸른 수염 p.115)

"하느님은 그것이 속죄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고 여겨요. 말하자면 개자식인 동시에 장사꾼인 셈이죠."

"신성 모독을 그만 두는 게 좋을 거요."

"왜요? 무슨 위험이 있는데요?"

"당신은 하느님을 모욕하고 있소."

"그 역시 저를 모욕하고 있어요. 하느님이 저를 자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했다면, 저도 그와 똑같은 권리들을 가져요. 당신은 절 반박할 수 없어요."(푸른 수염 p.116)

 

# 2.

"하느님은 그에게서 아내와 자식들을 앗아가고. 욥은 반항심을 품다가 무엇 하나 하느님으로 인한 것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이렇게 외치오. <주님께 축복을>. 욥이 충분히 고통을 겪었다고 생각한 하느님은 그에게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아니라 한 여자와 여러 자식들을 돌려주오. 욥은 어느 순간에도 불평을 하지 않소. 대체를 받아들인 거지. 이것만 봐도 인류가 이미 막돼먹은 존재라는 걸 알게 되오."(푸른 수염 p.114)

"당신은 나의 아홉 번째 세 든 여자요. 당신은 앞선 여덟 명의 여자를 대체하지 않소. 난 지금도 계속 그들을 사랑하오."(푸른 수염 pp.114~117)

 

# 3.

"그럼 왜 신은 당신을 막지 않았을까요……? 여자들이 암실에 들어가게 내버려 두는 걸?" ...(중략)...

"사랑은 믿음의 문제요. 믿음은 위험의 문제이고. 난 그 위험을 제거할 순 없었소. 주님께서도 에덴동산에서 그렇게 하셨소. 그분께선 위험을 제거하지 않을 정도로 피조물을 사랑하셨소."

"궤변이네요."

"아니오. 존중한다는 최고의 증거지. 사랑은 존중을 전제로 하오."(푸른 수염 pp.78~79)

 

 

처음에는 돈 엘레미리오가 들어가면 죽게 되는 암실을 만들어 끔찍한 결과를 좌초했냐의 문제로 시작했는데 이것이 가다보니 하나님은 왜 먹으면 죽게 되는 선악과를 만들어 놓았을까 하는 문제로 연결되었다. 돈 엘레미리오의 주장에 따르면 동거녀를 존중했기에 금지된 구역- 암실에 들어가는 멍청한 실수를 저지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하나님도 돈 엘레미리오처럼 인간을 존중해서 그런 조건을 달았을까나? 아무튼 『푸른 수염』은 내가 전혀 해보지 않았던 문제로 나를 이끌었음에 틀림없다. 

 

 

 

 

덧1.

책에서는 하느님이라 표기 되었는데 아마도 하나님을 잘못 번역해 놓은 듯하다. 내가 알고 있기로 하나님과 하느님은 분명 다른 존재로 하나님이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신을 뜻한다면 하느님은 하늘신을 뜻한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으로 표기했다.

 

 

덧2.

『푸른 수염』은 내가 평소에 전혀 관심 있게 접하지 않았던 샴페인의 세계로 나를 유혹(?)했는데 돈 엘레미리오와 사트뤼닌의 저녁식사에 나온 샴페인 - 그 중에서 생토로레와 곁들인 로랑 페리에, 바닷가재와 함께 한 1976년산 돔 페리뇽과 크룩 뒤 메닐 1843, 그리고 샴페인 중에 가장 아름다운 병에 담겨 있다는 뢰드레 크리스털은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마셔보고 싶다.

 

 

덧3.

책을 다 읽은 후 늦게나마 원작에 대해 알아봤다. 내가 읽은 『푸른 수염』은 샤를르 페로가 쓴 『푸른 수염』의 제목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었다. 샤를르 페로가 쓴 동화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푸른 수염이라는 귀족이 살고 있었는데 부인에게 들어가서는 안되는 방을 일러 주며 모든 방의 열쇠를 쥐어 준다. 하루는 푸른 수염이 여행을 떠나고 부인은 호기심에 금지된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그 사실은 안 푸른 수염은 부인을 죽여버린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고 결국엔 마지막 부인이 푸른 수염을 죽이고 그의 부를 차지한다. 어렴풋이 어렸을 적에 이런 내용의 동화를 접해 본 적이 있는 것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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