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의 철학

살아야 할 이유


 

살다보면 가끔 왜 살아가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느 순간 보니 내가 살고 있었고, 주변에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 나도 그렇게 살아간다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많다. 자존의 철학이라는 부제를 단『살아야 할 이유』는 왠지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그러니 살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겠지만 저자가 왜 그렇게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두툼한 표지를 넘겨 『살아야 할 이유』 속으로 들어갔다. 처음부터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 다음에도 자살. 그 다음에도 자살. 자살. 자살. 자살. 고대 유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시작하여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살아야 할 이유』의 부제를 자살의 사양 역사라고 붙여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책장을 넘기다보니 자살한 줄 몰랐던 아주 유명한 사람도 소개됐다. 소크라테스와 예수.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이야기는 그간 접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예수의 최후는 의문이 든다. 내 기억 속에서 예수는 죽음으로 내몰린 상태에서 숙연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 - 나의 관념 속에서는 결코 자살한 건이라 여겨지지 않는데 말이다. 책에서는 수많은 사람의 이름을 빌려 가며 "예수는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여러 가지 행동을 거부했으므로 확실히 자살의 기준에 들어맞는다"(살아야 할 이유 p.71)라고 설명했다. 과연 어디까지가 자살인지 생각하다보니 자살과 타살의 경계가 참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살아야 할 이유』 는 역시나 내 예상대로 "그러니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살을 생각한 이유가 현재의 불행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지 정말로 죽고 싶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자살은 단순히 한 개인의 죽음만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누군가가 자살을 하게 되면 가깝게는 그의 가족과 친구, 이웃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사회적으로는 또 다른 자살을 불러온다고 한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미래의 나를 위해 우리는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 있음에 스스로 감사하고 살아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살아야 할 이유』 에서 내가 찾고자 했던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한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다. 지금 와서 보니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은 '살아야 할 이유'가 아니라 '살아가는 이유'였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인류가 살아가는 이유. 어찌되었든 『살아야 할 이유』를 통해 삶에 대한 조금은 색다르고 긍정적인 관점을 얻을 수 있었음에 만족한다. 덧붙여 아래에는 『살아야 할 이유』 를 읽으며 표시해 두었던 부분이다.

 

 "우리가 자신의 가치를 보지 못하고 삶을 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면서도 계속 살아가는 쪽을 선택한다면 우리 공동체와 미래의 자신에게 빛나는 봉사를 하는 셈이다."(살아야 할 이유 p.296)

 

"낯설게 들리겠지만,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살하지 마세요. 삶은 항상 많은 사람들에게, 대부분의 시간 동안, 견디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정말 끔찍하지요. 하지만 겨디기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견디기 힘들 뿐입니다. ...(중략)... 오늘날에도 우리는 사람들에게 자살하지 말고 계속 살아가라고 격려하지만 그것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중략)... 나는 하나의 원칙을 선포하려 합니다. 자살은 공동체를 해치는 것입니다. 최고의 자살 예측 인자 중 하나는 그 사람이 아는 사람 중 자살한 사람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이는 자살 역시 지연된 살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계속 살아야만 합니다."(살아야 할 이유 pp.10~11)

 

"정말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말은 진실일지도 모른다. 자살을 꿈꾸는 자는 오히려 현재의 느낌대로 계속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을 뿐이다. 타자와의 조우를 통해 우리 존재가 구성괸다는 레비나스의 말이 옳다면 자살을 꿈꾸게 만드는 불행이라는 위기는 곧 기회다. 불행은 우리에게 도움을 구하라고, 혹은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고통을 드러내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외로움에서부터 인간과의 진정한 만남, 그리고 우리 자신과의 진정한 만남으로 나아가는 길고 어려운 여행을 시작한다."(살아야 할 이유 p.244)

 

"우리는 두 가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우리에게는 자살을 하지 말아야 할 책임이 있다. 둘째, 우리는 - 그리고 당신 자신은 - 당신에게 감사하고 당신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그 빚은 일종의 신뢰, 아름답고 어렵고 낯선 신뢰다. 우리는 서로를 믿음으로써 존재한다."(살아야 할 이유 p.283)

 

"우리는 타인에게 우리가 어떤 의미인지 진정으로 알 수 없으며, 미래의 자신이 어떤 경험을 할지도 알 수 없다. 역사와 철학은 우리에게 이러한 신비를 기억하라고, 친구와 가족, 인류, 삶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일들 - 삶이 제공하는 끝없는 가능성들 - 을 둘러보고 자신을 보존하라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삶의 이유가 되는 사랑과 통찰이 있고 소중히 여겨야 할 빛나는 순간들, 행복의 가능성, 힘든 시기를 겪는 다른 사람을 도와줄 잠재력이 있다. 역사적으로든 현재에든 사람들은 계속 살아가는 것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 인간 존재의 어두운 명과 그에 따르는 용기를 증명하고 태양을 기다리자."(살아야 할 이유 pp.296~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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