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폰으로 둔갑한 중고폰

그 속에 있던 사진

 

 

여태껏 3G를 쓰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다. 약정 기간이 끝난 후 누리던 합리적인 가격의 통신비 때문에 계속 3G를 쓰고 있었는데 최근들어 휴대폰 가격이 많이 내려가 새로 장만하기에 딱 좋다. 지인을 통해 제법 괜찮은 가격에 계약을 체결하고 폰을 받았다. 3.5인치의 작은 화면을 보다 5인치가 넘는 커다란 화면을 보니 큼직하고 시원한 것이 마음에 든다.

 

신기하고 들뜬 마음으로 하나씩 셋팅해 나갔다. 배경화면을 설정하다 잘못 눌러 갤러리를 클릭했는데 거기에 왠 사진이 들어 있다. 그것도 누군가가 찍어 놓은 셀카가. 샘플로 들어 있음직한 사진도 아니고 완전 황당하다. 당장 휴대폰을 개통한 대리점으로 연락을 해서 중고폰을 보냈냐며 항의했다. 대리점에서는 중고폰을 보냈을 리가 없다며 신청해 주신 분이 액정보호 필름을 붙여 달라고 해서 씰을 뜯었을 뿐이라고 급구 부인한다. 씰이 붙어 있는 상태로 받아도 중고폰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하던데 뜯어서 액정보호필름을 붙여 달라 했으니 더이상 할 말이없다. 액정보호필름 붙이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누가 대놓고 호갱님 아니랄까봐 시키지도 않은 일을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휴대폰에 모르는 사람 사진이 들어있는데 이 게 새폰이냐고 따지니 확인해보고 전화를 주겠다며 일단 전화를 끊는다. 잠시 후 전화가 와서는 고객님~.(이 때 고객님이라 듣고 호갱님이라 이해한다.) 안그래도 여기서 쓰던 핸드폰이 없어져서 어디갔나 찾았는데 그 게 고객님께 갔나봐요. 죄송해요. 바로 새폰으로 보내 드릴테니 그동안 지금 가지고 계신 핸드폰 쓰시다가 착불로 보내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거짓말도 잘한다. 핸드폰과 상자의 일련번호가 다르면 필름을 붙이려 꺼냈다가 잘못 넣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믿겠지만 휴대폰과 상자의 일련 번호가 같다. 처음부터 중고폰인 줄 알면서 내 게 보낸 것이다. 출고 상태로 초기화시켜 새것처럼 상자에 넣어 놓은 줄 착각 한 것이겠지. 공공연히 제조회사에서 리퍼폰을 재출고 하던 중 초기화가 잘못 된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이 경우는 온전히 대리점에서 잘못한 것이 틀림없다.

 

겨우 새폰을 수령해 대리점에서 알려 준대로 유심을 등록하려는데 유심이 등록되지 않는다. 계속 미등록 단말기라는 메시지가 뜬다. 다시 대리점에 연락을 해서 유심이 등록되지 않는다고 하니 114에 전화를 해서 통화품질에 문제가 있다고 신고하란다. 그러고 나면 대리점에서 핸드폰이 사용가능하도록 할 수 있단다. 열심히 대리점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114에 통화품질 체크를 요청하고 대리점에 전화를 했다.

 

아. 완전 바보같다. 대리점의 농간에 아주 충실히 놀아났다. 생각해보니 대리점에서는 일부러 중고폰을 나에게 보냈고 114에 통화품질에 문제가 있다고 신고하도록 유도했던 것이었다. 이미 중고폰으로 유심을 등록한 상태이니 새로운 폰에서는 유심을 등록하지 않고 쓸 수 있는데 대리점에서 고의적으로 새 휴대폰이 활성되지 않도록 만들어 놓고 나에게는 휴대폰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유심을 등록해야 하는 것처럼 알려 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리점과 통화를 하고 나니 유심을 등록하지 않고도 바로 휴대폰이 활성화된다. 대리점의 교활한 수법에 치가 떨린다. 안그래도 폰팔이들이 약정 때문에 통신요금이 할인 되는 것을 폰 값이 할인되는 양 하도 속여대서 - 아주 가끔 양심적으로 판매하는 분들도 있지만 -  그들의 말을 별로 신뢰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 사건을 겪고 나니 나의 관념 더욱 확고해졌다.

 

잠시 후 114에서 통화품질 확인을 위해 전화가 왔다. 사실을 밝혀야겠다. 통화품질에는 원래 문제가 없었고 중고폰이 와서 새폰으로 다시 등록하려는데 대리점에서 통화품질에 체크를 해야 된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었다고 이실직고 했다. 114 직원은 대수롭지 않은 듯 받아 넘긴다. 하긴 이유야 어쨋든 114 직원은 통화품질 확인만 하면 되는 것이니 괜히 이런 문제에 신경 쓸 필요가 없겠지.

 

이리하여 결국 새폰으로 둔갑했던 중고폰은 순전히 내가 쓰다 불편해서 돌려 보낸 셈이 되었다. 나는 대리점의 충실한 수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그 덕에 대리점에서는 택배비만 지불하고 중고폰에 대한 값을 치르지 않게 되었다. 통화품질에 체크가 되어 있으니 휴대폰 제조회사로 돌려보내면 끝이니 말이다. 그리고 휴대폰 제조업체에서는 성능에 아무 이상 없는 폰을 하자품으로 고스란히 되돌려 받게 되었다. 휴대폰 제조 업체에서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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