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발자국 5

나는 공산주의자다

 

 

나는 공산주의자다. 제목이 파격적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고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에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는 공산주의자다"하고 커밍아웃하는 것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공산주의자 - 빨갱이를 연상시키는 빨간색 책 표지에 '나는 공산주의자다'라고 적힌 책에 호기심이 생겼다. 약간 두툼한 책 속에 글씨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을 것이라 예상하며 가독성이 좋은지 책장을 훝어 넘겼다. 책장을 넘겨 보니 예상과 달리 어둑어둑한 그림이 꽉 차 있다. '나는 공산주의자다'라는 제목도 그렇지만 판화기법으로 표현된 굴직굴직한 선이 책의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나는 공산주의자다』는 허영철 원작의 『역사는 한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를 재구성한 책이다. 그 속에는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와 함께 허영철의 일생이 들어 있다. 그가 남북을 오가며 겪은 6·25 전쟁과 1954년 8월 남파되어 이듬해 7월 하순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하기까지. 책을 읽으면서 공산주의자 허영철이 아니라 순수하고 정의로운 인간 허영철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공산주의자다』 작업을 한 박건웅 작가가 직접 만난 허영철을 "간간히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 표정은 우리가 일찍이 흉악한 빨갱이라고 들어왔던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정말 순수하였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자다 p.345)라고 회상한 이유를 알겠다.

 

다만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아니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허영철이 전향하지 않은 댓가로 36년간 복역할만큼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가 좋다고 단번에 완벽한 공산주의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나는 공산주의자다 p.333)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해도 잘못 운영하면 잘못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나는 공산주의자다 p.24) 허영철은 공산주의 사회가 실현가능하다고 끝까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스머프 마을처럼 작은 마을 공동체에서라면 모르겠지만 역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국가 단위의 혹은 세계를 공산화하는 것은 애당초 실현 불가능한 허구인 것 같은데 말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