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남다른 책 제목에 관심을 가졌고, 책표지 모퉁이에 적힌 "내 삶의 주인이 되는"이라는 문구를 보고 읽기로 결정했다. 보니까 저자가 김정운 씨다. 한동안 안보인다 했더니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을 전공했단다. 그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나홀로 유학을 했다고. 왠만한 사람은 마음은 있어도 실제로 옮기지는 않을텐데. 참 자유롭게 사는구나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람 유명해져 강의도 많이 다니고 책도 쓰고 하니 일반 사람들에 비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 자유로울 수밖에.

 

그래서 말인데 저자가 하는 이야기가 "나 잘나가요~." 하면서 자기 자랑을 늘어 놓는 것으로 들렸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기 자랑이 섞일 수도 있고,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는데 내가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는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제목에 곁들어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이란 문구를 달았으면 저자가 나름대로 찾아낸 - 독자들도 따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책의 앞부분에서는 '하루하루를 겨우 견뎌내고 있는 보통 사람들'을 주된 독자로 표방해 놓고, 정작 그들이 어떻게 해야 저자처럼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단지 저자 자신은 먹고 살 궁리를 다 해 놓았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궁시렁 궁시렁.

 

그럼에도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를 통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에는 공감이 되었다. '내 삶의 주인'이 되려면 삶의 여유를 가지라는 것. 이건 나도 충분히 많이 느끼고 생각했던 부분인데... 이렇게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그 주제를 놓고 어쩌면 그렇게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채워 놓은 것인지... 저자와 나 사이에 엄청 두껍고 길게 놓여진 유리막 이 놓여 있었던 것같다.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또 너무 길어질 것같아 이번 글은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를 읽으며 수긍했던 부분을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 망가져 있습니다. 대한민국 성공한 사람들은 거의 다 만나봤습니다. 대부분 정상이 아닙니다. 본인만 모릅니다. ...(중략)... 자신의몸과 마음이 형편없이 망가져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주위 사람들은 다 압니다. 그가 가진 돈과 권력 때문에 아무 말 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그러다가 다들 '한 방'에 훅 가는 겁니다."(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p.6)

 

"격하게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정신없을수록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도 좀 적게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들 삽니다. 그렇게 사는 게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꾸 모임을 만듭니다. 착각입니다.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바쁠수록 마음은 공허해집니다."(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p.6)

 

"지난 몇 년간 내 삶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내 삶의 속도가 나를 슬프고 우울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난 언제나 빨리 말해야 했고, 남이 천천히 생각하거나 느리게 말하면 짜증 내며 중간에 말을 끊었다. 조교나 학생들의 느린 일 처리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 수업이나 각종 모임, 약속 시간에는 수시로 지각햇으며, 바쁘다며 항상 먼저 나왔다. 그러나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교토의 한 귀퉁이에서 내 삶은 비로소 정상 속도를 되찾은 것이다. ...(중략)... 느리게 걷고, 천천히 말하며, 기분 좋은 생각을 만히 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한 거다. 행복은 추상적 사유를 통한 자기 설득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감각적 경험이기 때문이다."(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pp.3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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