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눈먼 부엉이』를 반납하고 새로이 읽을 책을 찾던 중 나의 눈길을 사로 잡은 책.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하필이면『눈먼 부엉이』를 번역한 사람이 이 책의 저자이다. 아직 『눈먼 부엉이』의 여운이 가시지도 않은 상태인데 이 책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운명인가보다. 출간 시기가 『눈먼 부엉이』의 출간시기와 비슷한 걸로 봐서는 저자가 『눈먼 부엉이』의 영향을 받아 쓴 작품일 것이 뻔하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부터『눈먼 부엉이』에서 보고 배운 것을 적용해서 쓴 책임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책 중간 중간 『눈먼 부엉이』에 나온 기법을 응용하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를 읽으면서 곳곳에 드러나는『눈먼 부엉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어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책의 초반부에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해 들어가는 상처가 있다"는 문장을 읽고 깜짝 놀랐다. 이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독특한 풍체의 문장은 다름 아닌 『눈먼 부엉이』의 첫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문장을 통째로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에 가지고 와 주인공 아야미와 여니가 『눈먼 부엉이』를 읽으며 독일어를 공부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순간 저자가 독일어로 된 『눈먼 부엉이』를 한국어로 번역했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 외에도 저자는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에 의도적으로 『눈먼 부엉이』를 드러낸다. 여니가 아야미를 보고 "눈먼 부엉이"라고 부르면서 직접 『눈먼 부엉이』를 드러내는가 하면 주인공의 냉장고 속에 항상 오이와 맥주를 채워 놓음으로써 『눈먼 부엉이』에서 종종 묘사하고 있는 "오이 끄트머리처럼 살짝 씁쓸한 풀 맛이 나는 입술"이 연상되도록 설정해 놓기도 했다.

 

또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에는 『눈먼 부엉이』에서처럼 중간 중간 비슷한 장면을 반복하여 연출하고 있다. "소녀는 아무런 장식 없이 거친 질감의 흰 무명 한복차림이었다. 소녀에게서 거칠게 풀 먹인 무명천 냄새가 났다. 숱 많고 검은 머리칼은 등 뒤에서 하나로 묶었고, 치맛자락 아래 드러난 맨발은 삼베 천을 꼬아 만든 샌들을 신고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p.13)와 "여자의 치마가 낡은 행주처럼 펄럭였다. 힘줄이 불거진 앙상한 맨다리와 초라하게 작은 발, 새것으로 번쩍거리지만 이상하게 싸구려처럼 보이는 구두가 드러났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p.22) 등의 표현을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얼기 설기 반복되는 장면의 묘사는 마치 조각난 이야기의 퍼즐이 맞춰질 듯하면서 맞춰지지 않는다. 『눈먼 부엉이』에서 가져온 독특한 기법이다. 음향기사의 흰 버스와 사고가 난 흰 버스, 김철썩 시인이 찍은 흰 버스의 사고 장면은 모두 같은 흰 버스를 묘사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그 흰 버스가 그 흰 버스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3장에서 아야미가 있는 역광장 스크린에서 어릴 적 이름이 '여니'였던 '아야미'라는 여성이 <가족 찾기> 생방송을 통해 부모를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도 아야미와 여니의 관계가 풀릴 것 같으면서도 풀리지 않는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하룻밤 사이에 서너 개의 비슷한 꿈을 꾼 듯한 기분이 든다. 몽환적이다. 꿈 속에서는 이런 저런 구체적인 사건이 있었지만 자고 일어나면 어떤 부분은 생생하게 기억나는 한편 일부분이 알송달송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은 마치 자고 일어나 여렴풋이 기억이 나는 꿈들을 기억해내는 것같이 난해하고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인지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눈먼 부엉이』처럼 독자를 가파른 미궁 속으로 빠뜨리지는 않는다.

 

 

 

 

ㅇ 엮인글

 

- 눈먼 부엉이(http://ijmi.tistory.com/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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