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효과성과 개발효과성

 

 

원조효과성과 개발효과성

 

 

 

 

1. 원조효과성 vs 개발효과성

 

2008년 가을 ‘가나 아크라 회의가 한국 국제개발협력에 주는 정책적 함의’라는 주제로 개최된 포럼에 갔다. 아크라에서 국제개발협력에 관한 의미 있는 회의가 개최되었다는 사실만 알고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아크라 회의에 대해 다루는 포럼이 개최된다고 해서 찾아가게 된 것이다. 이 포럼에서는 원조효과 제고를 위한 국제사회의 논의의 흐름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AAA가 우리나라 ODA 정책에 미치는 영향과 아크라회의에 대한 세계시민사회의 움직임을 다루었다.

 

MDGs 설정 이후 세계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사회에서의 노력이 촉진되고 있는 가운데 선진 공여국으로 구성된 DAC에서 더 나은 원조를 제공하기 위해 원조의 효과를 증진시키기 위한 논의를 본격화했다. 2003년 원조조화에 관한 로마 선언을 도출해내고 이를 발전시켜 2005년에 원조효과성에 관한 파리선언을 채택했다. 그리고 2008년에는 파리선언의 중간 점검을 하고 파리선언의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 아크라행동계획을 수립했다. 일반적으로 공여국은 원조효과성과 효율적인 관리에 관심을 가지는데 공여국 중에서도 선진 공여국들로 구성된 DAC에서 이러한 논의를 이끌어가는 것이 다른 개발관련 조직에서 하는 것보다 효과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파리선언의 이행에 대한 중간 점검 결과는 실망스러웠지만 원조효과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국제적 합의가 도출되고 아주 약간의 진전이 있었던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시민사회에서는 그렇게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파리선언이 지나치게 기술적이고 원조의 시스템에 중점을 두고 있어 실질적인 개발로 연결이 되지 않음 지적하면서 개발협력 논의의 역점이 원조효과성에서 개발효과성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개발에 있어 중요한 이슈인 인권, 사회정의, 성평등, 지속가능 환경 등을 포함하여야 하며, 보다 야심찬 목표를 설정할 것을 주문하였다. 하지만 아크라회의 결과 시민사회가 제안한 16개 항목 중 CSO를 개발행위자로 인정하는 것만이 반영되었고 나머지는 미반영되거나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각주:1] 선진국을 중심으로 원조전달에 초점을 두고 있는 DAC의 고위급포럼과 다양한 이슈와 다양한 행위자를 포함하는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개발효과성, 어쩌면 그 둘은 애당초 어울리지 않는 관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원조효과성에서 개발효과성으로

 

개발효과성으로의 논의는 그동안 전개되어 온 원조효과성 논의의 자체적인 한계와 더불어 변화하는 국제원조 체제에 원조효과성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하였다. 세계경제위기, 기후변화와 환경문제, 식량부족 등의 개발원조 위기가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지금까지의 국제개발 논의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 요인을 고려한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BRICs를 비롯한 신흥공여국들과 민간 기업, 재단, 시민사회단체 등 개발 행위자의 다변화로 인해 새로운 원조 분업체계와 새로운 협력체계가 요구되는 실정이다. 이렇게 다양하고 포괄적인 접근을 요구하는 국제원조 환경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개발효과성이 대두한 것이다. 개발효과성은 개발과 상호 연관되어 있는 다양한 이슈는 물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다양한 행위자를 포괄하는 접근방식을 택한다. 그래서 개발효과성 논의에는 인권, 성평등, 환경, 사회정의, 노동, 무역 등 개발과 연계된 모든 분야가 포함되며 원조정책과 무역, 투자, 노동, 환경, 보건, 기술, 교육 정책 등 개발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정책의 정책일관성 또한 중요한 요소로 다루어진다. 그리고 다양한 개발 주체들을 공정하게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원조체제로의 전환이 필수적인 요소로 고려된다.

 

변화하는 국제원조 체제와 새로운 개발주체의 등장에 따라 적실성과 정당성 문제에 직면한 DAC은 새로운 DAC으로의 개편을 논의하고 있다. 원조개혁그룹(Reflection Group)은 DAC의 활동이 원조에서 개발로 확대되어야 하며 정책일관성과 지구적 공공재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어야 함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국제협력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고위급 포럼의 논의를 이끌어 온 원조효과작업반을 재편성하여 다양한 행위자들을 논의에 참여시키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아크라회의에서 독립적인 개발주체로 인정받은 시민사회는 부산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논의에 참여함으로써 자신들의 주장을 보다 직접적으로 개진하는 한편 Open Forum for CSO Development Effectiveness를 중심으로 스스로의 개발효과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논의를 진전시켜 나가고 있다. 아직 개발효과성이 어떻게 달성되는지 목표를 세우고 이행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설정하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시민사회 개발효과성을 위한 이스탄불 원칙’과 내용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고위급포럼에서 이스탄불 원칙을 지지하고 시민사회의 개발효과성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3. 개발효과성 담론 속의 함정

 

제4차 고위급포럼인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에 있어 중요한 화두는 개발효과성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개발효과성에 대한 합의된 개념을 설정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World Bank, OECD, UN 같은 국제기구는 물론 각 국가들과 시민사회가 제각기 개발효과성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개발효과성이라는 담론은 있지만 그것이 시민사회에서 말하는 다차원적이고 총체적인 개발효과성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관점에 따라 개발효과성은 원조효과성과 같거나 비슷한 것일 수도 있고 개발효과성의 개념 속에 원조효과성이 포함되는 것일 수도 있다. 때문에 어떤 개념의 개발효과성을 채택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남는다. 개발효과성에 대한 관점은 NSI에서 발표한 "From Aid to Development Effectiveness"에 잘 구분되어 있는데 NSI에서는 개발효과성에 대한 관점을 ‘조직효과성’, ‘정책일관성’, ‘원조의 개발성과’, ‘총체적인 개발성과’ 4가지로 제시하고 있다.[각주:2] 이들은 연속선상에 있으며 후자로 갈수록 포괄적인 개념이다. 가장 협의의 관점인 조직효과성은 주로 세계은행과 같은 다자간 원조기관에서 사용하는 개발효과성의 개념으로 조직의 성과와 결과의 효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좀 더 넓은 개념인 정책일관성은 원조정책과 무역, 투자, 안보, 환경 등 비원조정책의 일관성을 말하며, 원조의 개발성과는 원조를 통해 나타나는 실질적인 개발 결과를 뜻한다. 가장 광의적 관점인 총체적인 개발성과는 원조를 통한 성과뿐만이 아니라 개발에 관한 모든 부문의 총체적인 성과를 뜻하는 개념으로 조직의 효과성, 정책 일관성, 원조의 개발성과를 모두 포괄한다. 이 4가지 관점 중 조직효과성으로서의 개발효과성은 파리선언에서 말하는 원조효과성과 상당히 비슷하다. 만약 부산회의에서 합의한 개발효과성의 개념이 조직효과성에 국한된다면 원조효과성에서 개발효과성으로 용어는 바뀌겠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게 된다. 그리고 조직효과성보다 포괄적인 개념 - 정책일관성, 원조의 개발성과, 총체적인 개발성과로서 개발효과성을 정의하게 된다면 원조효과성은 개발효과성의 부분으로 포함되게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조효과성과 개발효과성은 서로 배타적이거나 독립적인 개념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어떠한 수준에서 개발효과성의 개념을 합의한다 하더라도 원조효과성은 개발효과성의 부분으로 포함된다. 그런데 원조효과성에서 개발효과성으로의 논의를 보면 대다수가 원조효과성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개발효과성을 제시하고 있어 원조효과성을 배타적으로 밀어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원조효과성에 대한 강조와 점검 없이 개발효과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전통 공여국들에게 원조효과성에 관한 파리선언의 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파리선언에 서명하지 않은 중국을 비롯한 신흥 공여국에게 원조효과성에 대한 원칙을 이행해야할 의무에서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이처럼 개발효과성이 원조효과성과 관련이 없는 개념으로 해석되어 원조효과성으로부터의 도피처로 악용될 수 있으므로 이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다기보다는 원조효과성에서 보다 광의적인 개발효과성으로 논의를 확장시켜 나간다고 봐야 하겠다.

 

 

 

4. ‘담론’보다 ‘본질’을

 

담론만 강조하다보면 개발협력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 비록 원조효과성에 관한 논의가 공여국을 중심으로 재무평가와 원조전달에 치우친 나머지 실질적인 빈곤퇴치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원조효과성에 대한 논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전개된 원조의 비효율적 운영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개선 노력의 산물이다. 그리고 원조효과성에서 개발효과성으로 국제개발협력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고자 하는 것도 실질적인 개발로 연결되지 않은 원조효과성에 대한 논의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조효과성과 개발효과성이 등장한 동기를 보면 그 둘은 공통적으로 보다 나은 원조를 하기 위한 시도에서 출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약 원조효과성에 관한 파리선언이 없었더라면 복잡한 원조 절차와 중복된 프로그램들로 인해 과도하게 인적·물적 자원이 소모되는 등의 비효율적인 운영을 개선하려는 시도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파리선언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목표달성에는 한참 못 미쳤지만 원조효과성에 관한 논의는 분명 국제개발협력에 있어 필요한 요소를 다루고 있다. 무조건적인 비판보다는 원조효과성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실패 원인을 밝혀내고 이를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1986년 UN에서 채택한 ‘발전에 관한 권리 선언’에서 개발(발전)은 “포괄적인 경제, 사회, 문화, 정치적 과정으로서 발전과 그로부터 산출되는 이익의 공정한 분배에 있어 자유롭고 능동적이며 의미 있는 참여의 기초 위에 전인류와 모든 개인의 복지 향상을 목표로 하는 것”[각주:3] 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효과성을 측정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이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것이 지향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성공사례뿐만 아니라 실패사례를 분석하고 피드백 하는 일련의 과정이 선순환 될 수 있도록 하여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내야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전개될 개발효과성에 관한 논의는 국제적 합의의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지표를 달성하고 궁극적으로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길 기대한다.

 

 

  1. BetterAid, 2009, “An assessment of the Accra Agenda for Action from a civil society perspective”, p.5 [본문으로]
  2. Shannon Kndornay, 2011, "From Aid to Development Effectiveness", A working paper, The North-South Institute, pp. 10~24 [본문으로]
  3. UN, 1986, Declaration on the Right to Development (A/RES/41/128) http://www.un.org/documents/ga/res/41/a41r128.htm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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